기타

효성 창업주 故 조홍제 회장 탄신 100주년 기념식 거행

    - 56세에 효성물산으로 독자사업 시작

    - 섬유, 중공업, 타이어 분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켜

    - 동양공전 등 육영사업에도 심혈 기울여

    6월 15일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는 효성그룹 창업자 故 만우(晩愚) 조홍제(趙洪濟 : 1906~1984) 회장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학창시절 나라 잃은 설움을 몸소 겪고, 해방 후 불모의 한국 땅에서 산업을 일으켜 굴지의 대기업을 키운 과정은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듯하다.

    故 조홍제 회장은 중앙고보 시절 6.10만세 운동의 주모자로 옥고를 치렀으며 늦은 나이에 사업에 입문하여 이병철과 함께 삼성물산을 공동경영하고, 제일모직·제일제당을 설립하여 삼성그룹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56세의 나이에 효성물산으로 독자사업을 시작하여 동양나이론을 설립하고 한국타이어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메이커로 성장시켜 놓았다.

    故 조홍제 회장은 또한 배명학원과 동양학원 이사장을 맡아 육영사업에 헌신했다. ‘늦되고 어리석다’라는 의미의 ‘만우(晩愚)’라는 호와는 달리, 그는 늦었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간 기업인이다.

    효성그룹은 창업주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15일 오후 6시 하얏트 호텔에서 갖는다. 기념사업위원회는 “고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경제발전과 육영에 헌신하신 고인의 업적과 정신을 추모하는 뜻에서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기념행사는 한국경영사학회에서 수여하는 창업대상 시상식도 함께 거행된다. 이문선 한국경영사학회 회장은 창업대상 수상자 선정 이유에 대해 “조홍제 회장은 공업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산업을 일으켜 한국의 경제 발전의 기틀을 다지며 우리나라 경영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강신호 전경련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남덕우 前총리, 이회창 前 한나라당 총재 등 정·재계 인사와 조석래 회장을 비롯한 유족 및 전현직 임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늦되고 어리석을지라도"라는 제목의 일화집을 출간한다. 이 책에는 효성그룹 전·현직 임직원들과 가족, 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90여 편의 일화가 담겨 있다. 일화집에는 제일모직과 제일제당 설립을 주도해 삼성을 한국제일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내용, 그 뒤 삼성과 결별하고 효성을 창업하여 1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섬유, 타이어, 중공업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과정, 만우의 경영철학은 물론 자녀 교육방식, 아내에 대한 사랑 등 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 조홍제 회장 약력

    효성그룹 창업자인 만우 조홍제 회장은 1906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했다. 만우는 어린시절 한학을 수학하고 늦은 나이에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1923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나라 없는 시대에 피 끓는 청년정신은 6·10만세운동을 주동하여 모진 옥고를 치르는 등 면학에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1935년 30세에 일본법정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대학졸업 후 고향에 돌아와 농민의 지도자로 일하다가, 1945년 조국이 해방되자 기업을 통하여 국가에 기여한다는 뜻을 세우고 호암 이병철 회장과 삼성물산의 창립 그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삼성그룹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의 설립을 주도하여 50년대 생활필수품의 수입대체는 물론 공업 불모지였던 이 땅에서도 공업입국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1962년, 만우는 이병철 회장과의 동업을 청산하고 효성물산을 토대로 독자사업을 펼치게 된다.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탁월한 경륜으로 화학섬유사업의 장래성을 꿰뚫어 보고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동양나이론은 발전을 거듭하여 타이어코드 세계 1위, 스판덱스 세계 2위, 나일론 세계 5위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섬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또한 당시 부실기업이었던 한국타이어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타이어메이커로 육성시켰으며, 산업발전의 대동맥인 전력 송배전망 선진화를 위해 한영 공업을 인수하여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하고 중공업에 진출하는 등 20여 개의 대기업 군을 거느리게 된다.

    인재의 육성에 남다른 관심과 열의를 가졌던 만우는 1959년 배명중고등학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20여 년간 지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1976년에는 동양학원 이사장직을 맡아 동양중 ·공업고등학교와 동양공업전문대학을 크게 발전시킴으로써 전문기술인력의 육성에 진력하였다.

    평생 고결한 선비정신과 민족애를 간직하고 정도경영의 길을 걸었으며, 육영사업가로서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만우 조홍제 회장은 78세를 일기로 1984년 1월, 영면했다.

    ● 조홍제 회장 연보

    1906.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출생

    1926. 중앙고보 재학 중, 6.10 독립만세운동 주동으로 옥고

    1935. 일본 호세이(法政) 대학 경제학부 졸업

    1948. 이병철회장과 ‘삼성물산’ 동업 경영

    1953. 제일제당 설립

    1954. 제일모직 설립

    1959. 배명학원 이사장 취임

    1962. 삼성그룹과 결별 후 효성 창업

    1962. 한국타이어 경영에 참여

    1963. 대전피혁 인수

    1966. 동양나이론 설립

    1970. 한일나이론 인수

    1971.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 설립

    1973. 동양폴리에스터 설립

    1975. 효성중공업 전신인 ‘한영공업’ 인수

    1976. 금탑산업훈장 수훈

    동양학원 이사장 취임

    1984. 숙환으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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