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모스크바’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언가 두렵고 으스스한 것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막연한 동경도 있는 그런 도시다. 과거 공산주의 종주국 구 소련의 수도에서 1991년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정책으로 러시아의 수도로 바뀐 지 14년. 모스크바는 그간 시장경제체제의 과실로 유럽의 한 도시로서 빠르게 변모하고 있으며,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IS)의 정치 및 경제 중심지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모스크바지사, ‘러시안 영 파워’가 책임진다
모스크바지사는 1991년에 설립되었다. 초대 지사장은 현 송성진 감사로 초기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사 영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김천덕 지사장은 1995년에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고, 김희록 차장이 무역PG 화학PU에서 2003년에 부임, 화학제품을 위주로 신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지채용인은 오래된 순서로 셰바노프(Shevanov)와 보리스(Boris), 라만(Raman), 유리(Yuri) 등 4명이며 셰바노프를 제외하면 모두 ‘영 파워(Young Power)’로 지사영업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서른일곱 살의 셰바노프는 송성진 지사장 시절 입사했으나 1993년 개인사업을 이유로 퇴사했다가 1996년에 재입사했다. 타이어와 배터리 판매 및 대한수출(CPL 등) 업무를 하고 있다. 쌍둥이 아들이 있고 부인은 국세청 과장급인데 훨씬 소득이 많아 부인 에게 쥐어 살고 있다고 한다.
올해 서른이 된 보리스는 카자흐스탄 국립대학 출신으로 카 자 흐스탄 재무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형적인 미남.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무역PG 디지털기계PU의 품목을 맡고 있는데 요즈음 실적이 부진하여 고민하는 눈치다.
스물다섯 살의 라만은 인도계 러시아인으로 오래 전에 러시아에 정착했다. 무진장 똑똑하고 교우관계가 넓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 지금은 무역PG 화학PU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일찌감치 우크라이나 출신 부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가장 젊은 유리는 올해 스물 셋. 겉으로는 유순하고 허약해 보이나 악바리 근성으로 뭉쳐 있고, 러시아 일류 대학인 국제관계대학(MUGIMO) 출신이다. 아직 미혼이어서 여자친구가 많은 것을 늘 자랑한다.
러시아에서 사업하려면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한다
러시아는 1992년 이후 시장경제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생긴, 다른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상거래 관행이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이다. 첫째, 우리가 물건을 팔려고 하면 번번히 외상을 요구하고, 러시아산 물건을 사려고 할 땐 선금을 요구한다. 둘째, 계약서에 서명을 쉽게 하나 믿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선수금 입금이 확인된 후에 생산을 시작해야 한다. 셋째, 회사이름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사람’을 보고 장사를 해야 한다. 선적서류를 꾸밀 때도 요구사항이 많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은행도 정비가 되어 가는 추세라 L/C 거 래도 간혹 있으나, 기본적으로 T/T 거래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거래선이 매 출신 고를 15-20%만 하는 관계로 언더-밸류 등 요구사항이 많다.
외환위기의 기억 “돈을 받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지난 10년간 근무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은데, 1997년 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일이다. 당시 나이론 원료인 카프로락탐을 월 평균 300만불에서 400만불 정도 러시아의 두 개 공장과 백러시아 공장에서 구매하였는데, 대금은 100% 선불로 지급해야 했다. 전월 말까지 지불을 완료하면 금월에 물건이 순차적으로 출고가 되는 것으로, 간혹 입금이 며칠 지연되어도 물건은 그냥 출고가 됐다. 그러나 때마침 외환위기 발생시점에서 본의 아니게 약 150만 불의 빚을 지게 되어 공장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각 공장마다 대응하는 태도가 특이했다.
러시아 A사: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며 입금을 기다려 주겠지만 대신 이자는 지불하여 달라.”
러시아 B사: 덩치가 큰 친구들(?)과 함께 사장이 방문하여 은근히 본인 가족을 운운하며,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고 압박을 가해 왔다.
백러시아 회사: 국영기업이라 입금이 지연되면 자기 목이 날아가게 생겼으니 먼저 갚아 달라고 읍소를 해 왔다.
상이한 반응처럼 뒷이야기도 다르다.
러시아 A사의 경우에는 약 2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였으며, 그 후 구매를 재개하였고 지금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B사에는 본인 가족의 안위(?)를 위 해 제일 먼저 돈을 상환하였다. 그 후 사장은 경영권 다툼에 휩싸여 독살(!) 당했다. 백러 시아 회 사에는 약 6개월 만에 완납을 했고, 아직도 고마워하고 있다. 당시 담당자, 자금담당이사 및 사장은 아직까지 같은 자리에서 잘 근무하고 있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유명 브랜드의 각축장이 된 러시아
현재 러시아, 특히 모스크바는 푸틴 정부의 등장 이후 정치적인 안정과 고유가의 지속으로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소비재를 중심으로 전세계 유명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과 LG 전자제품은 일본기업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으며, 현대자동차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 대수 기준으로 1위가 확실시되고 있다.
러시아를 넘어 중앙아시아로 나아가는 모스크바지사
이런 가운데 우리 모스크바지사는 효성의 특성상 최종 소비재보다는 푸틴 정부의 제조업 진흥정책에 맞추어 제조업에 필요한 중간재 및 원료와 기계설비 판매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다른 상사들보다 먼저 새로운 품목 개발에 집중하고, 또한 타 상사가 쉽게 근접을 하지 못하는 특수한 분야를 선점하는 전략을 구사, 화학제품 위주로 판매를 늘리고 있다.
앞서 소개한 김희록 차장과 젊은 현지채용인의 ‘영 파워’와 그간 축적된 지사의 노하우를 결합하여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으며, 시장을 인근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으로 넓혀 나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효성의 주 력제품인 타이어코드와 스판덱스 원사의 판매가 부진한 것인데, 향후에는 현지의 특이한 거래관행과 대금결제조건을 극복하여 꼭 성공하고 싶다. 모스크바지사에 대한 본사 직원들의 보다 많은 관심을 기대하며 오늘도 매일 아침 루스키(러시아인)와 보드카로 일전을 치를 마음가짐으로 집을 나선다.
♣ 러시아에 대한 잘못된 상식들
한국에서 일반인들이 러시아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Q: 러시아에는 여름이 없다?
A: 러시아의 6월부터 8월까지는 여름으로 에어컨이 필수다. 게다가 약 일주일정도 열대야도 있다.
Q: 러시아인들이 마시는 보드카는 엄청난 독주다?
A: 대개 알코올함량이 40%로 양주와 도수가 같고, 중국의 백주(白酒)는 이보다 높은 도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서민들은 대단히 못살고 문화수준도 낮다?
A: 스탈린 시대 때 잘 살아본 경험이 있으며, 아직 국가가 지원하는 후생복리가 많이 남아 있어 삶의 질은 한국보다는 낮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민들의 역사, 문학, 음악,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Q: 마피아 천국이다?
A: 러시아의 마피아는 주로 ‘비즈니스 마피아’로 일반인들은 신문이나 방송 이외에는 접할 기회가 없다. 동네 마피아는 진정한 마피아가 아니다.